아카이브가 재료라면 여기는 그 재료로 지은 이야기다. 웹에는 요약과 근거를 둔다 — 서사와 연출은 영상의 몫이다.
참값은 아무도 모른다. 과학이 찾아낸 답은 참값을 맞히는 법이 아니라, 얼마나 모르는지를 적는 법이었다.
자를 짧게 쥘수록 해안선은 길어진다. 길이는 대상의 성질이 아니라 자의 성질이었다.
기원전 240년, 한 사서가 그림자 각도 하나와 낙타 걸음 거리만으로 지구 둘레를 계산했다.
왕의 팔뚝을 버리고 지구를 기준으로 삼으려던 시도가, 결국 빛의 속도에 도착하기까지.
음수는 계산에서 먼저 나타났고, 수학자들은 그것을 400년 동안 수로 인정하지 않았다.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은 10월 15일이었다. 열흘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열흘어치의 오차를 갚은 것이다.
1973년 버클리는 여성 차별로 고발됐다. 학과별로 뜯어보니 결과가 뒤집혔다. 둘 다 같은 자료였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화음과 어느 조로든 옮겨 다닐 수 있는 자유는 양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를 골랐다.
과학의 참·거짓을 가르는 그 문턱은 계산에서 나온 값이 아니다. 피셔가 표를 만들기 편해서 고른 값이다.
원자시계가 지구보다 정확해진 순간부터, 우리는 1분이 61초인 날을 만들어 왔다.
오케스트라가 맞추는 그 한 음은 물리가 아니라 협상의 결과다. 그리고 지금도 표류하고 있다.
원을 360으로 자른 이유는 원 안에 있지 않다. 하늘과 60진법 안에 있다.
4000년 전 바빌로니아가 아직 우리 손목시계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호로 적기까지 인류는 수천 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기호가 수학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