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 · MMXXVI

이야기 목록

EP01 · 단위

미터의 탄생 — 지구를 재서 만든 단위

왕의 팔뚝을 버리고 지구를 기준으로 삼으려던 시도가, 결국 빛의 속도에 도착하기까지.

문제는 단위가 아니라 권력이었다

18세기 프랑스에는 길이 단위가 수백 개 있었다. 영주마다 달랐고, 같은 이름의 단위가 마을을 건너면 길이가 달라졌다. 이건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거래의 문제였다. 재는 자를 쥔 쪽이 언제나 유리했기 때문이다.

큐빗처럼 몸에서 나온 단위는 재현할 수가 없다. 왕이 바뀌면 팔뚝도 바뀐다. 혁명기 프랑스가 찾은 답은 "누구의 것도 아닌 기준" 이었다 — 지구.

지구의 사분의 일을 천만으로 나눈다

1791년 프랑스 과학원은 북극에서 적도까지 자오선 길이의 1천만분의 1을 1미터로 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길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델랑브르와 메솅이 됭케르크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자오선을 실측하러 떠났다. 자오선 측량에 7년이 걸렸다. 혁명과 전쟁 한복판이었고, 두 사람은 간첩으로 몰려 여러 번 체포됐다.

그렇게 1795년 미터법이 제정됐다. 다만 측량에는 오차가 있었고, 지구는 완전한 구가 아니었다.

기준은 계속 도망갔다

이후 미터의 정의는 세 번 더 옮겨간다.

1875년 미터협약으로 백금-이리듐 원기가 국제 표준이 됐다. 하지만 금속 막대는 온도에 따라 늘고, 시간이 지나면 미세하게 변한다. 무엇보다 불타면 끝이다.

그래서 1983년, 미터는 물건이 아니라 으로 정의된다.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가는 거리. 광속을 상수로 못박음으로써 미터는 어디서든 재현 가능한 값이 됐다.

같은 논리가 2019년 SI 재정의에서 킬로그램에도 적용된다. 130년간 금고에 보관되던 국제 킬로그램 원기가 은퇴하고, 플랑크 상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남은 것

미터의 역사는 기준을 인간에게서 떼어내려는 200년짜리 노력이다. 팔뚝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금속 막대로, 막대에서 자연 상수로. 그때마다 "더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옮겨갔다.

지금 미터의 정의에는 지구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1미터의 길이는 그때 델랑브르와 메솅이 재어 온 그 길이와 거의 같다. 기준은 바뀌어도 눈금은 이어진다.

SRC근거7

이 이야기가 딛고 선 아카이브 항목들. 각 항목에 출처가 달려 있다.

미터 m1793c = 299792458 m/s (exact)확정
미터법 제정179518 Germinal An III (1795-04-07)확정
자오선 측량(들랑브르·메셍)1792Dunkerque–Barcelona 호확정
미터협약187517개국 서명, 1875확정
SI 2019 재정의2019발효 2019-05-20확정
킬로그램 kg1795h = 6.62607015e-34 J·s (exact)확정
큐빗BCE 3000≈0.45–0.52 m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