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 · MMX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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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4 · 숫자

0보다 작은 수 — 400년의 거부

음수는 계산에서 먼저 나타났고, 수학자들은 그것을 400년 동안 수로 인정하지 않았다.

빚은 있는데 수는 없다

기원전 2세기 중국의 『구장산술』에는 이미 음수가 나온다. 산가지를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나눠 놓고, 붉은 것을 더할 것, 검은 것을 뺄 것으로 삼았다. 방정식을 풀다 보면 뺄 수 없는 뺄셈이 나오는데, 그것을 그냥 색으로 구분해 계속 계산했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브라마굽타는 7세기에 음수를 '빚'으로 부르며 부호 규칙을 썼다. 빚에서 빚을 빼면 재산이 된다 — 오늘날의 (−)×(−)=(+)다.

음수는 실용에서는 진작 쓰이고 있었다. 문제는 유럽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수"

그리스 수학은 수를 길이로 생각했다. 길이는 음수가 될 수 없다. 이 관점이 유럽에 그대로 이어져, 16세기까지도 음수는 수로 취급되지 않았다.

방정식을 풀다 음수 해가 나오면 "거짓 해(radices falsae)"라 부르고 버렸다. 대수학이 아랍을 거쳐 들어왔을 때도, 유럽 수학자들은 계수를 모두 양수로 만들기 위해 방정식을 여러 형태로 쪼개 다뤘다. ax²+bx=c와 ax²=bx+c를 다른 종류의 문제로 취급한 것이다.

파스칼은 0에서 4를 빼면 0이라고 썼다. 드 모르간은 19세기에도 음수를 "터무니없다"고 했다.

회계 장부가 먼저 인정했다

수학이 망설이는 동안 상업은 이미 음수를 쓰고 있었다. 복식부기의 차변과 대변이 그것이고, 빚은 실재했다.

+와 − 기호가 인쇄물에 처음 나타난 것도 상업 문서에서였다 — 1489년 비드만의 책에서 창고의 초과분과 부족분을 표시하는 기호로 쓰였다. 연산 기호가 아니라 재고 표시였던 것이다.

수직선이 해결했다

음수가 받아들여진 것은 논증이 아니라 그림 덕분이었다. 수를 점이 아니라 직선 위의 위치로 보면, 0의 왼쪽은 자연스럽다. 오른쪽으로 세 걸음 갔다가 왼쪽으로 다섯 걸음 가면 어디인가 — 그 자리에 이름을 붙이면 그만이다.

이 관점이 자리잡자 확장은 빨랐다. 곧 허수도 같은 방식으로 편입된다. 직선 위가 아니라 직선 바깥에 자리를 주면 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남은 것

음수의 역사는 수학이 계산보다 늦다는 것을 보여준다. 셈은 먼저 굴러가고, 그 셈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나중에 정리된다.

0이 '없음'을 수로 만든 사건이라면, 음수는 '없는 것보다 적음'을 수로 만든 사건이다. 두 번 다 저항이 있었고, 두 번 다 실용이 먼저 이겼다.

SRC근거8

이 이야기가 딛고 선 아카이브 항목들. 각 항목에 출처가 달려 있다.

음수 BCE 200x < 0근사
0(영) 06280근사
허수(i) i1545i² = −1근사
알자브르(al-jabr) — 대수학의 기원830al-jabr wa'l-muqābala → algebra근사
인도-아라비아 숫자 0–9500base-10 위치기수법 (positional decimal)근사
덧셈·뺄셈 부호(+ −) + −1489a + b, a − b근사
한자 숫자(漢數字) BCE 120010진 명수법 (multiplicative)근사
산가지·산목(算籌) BCE 400base-10 위치기수 (막대 배열)근사